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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이 오늘날의 모든 신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질 수 있는 은사인가?

RETHINK 시리즈

by 조셉 선교사 2020. 11. 1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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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성령의 은사 중에 하나인 방언은 교회에서 지속적으로 논쟁이 되는 주제였습니다. 특히 오순절 교단의 신자들에게는 방언의 은사가 성령 세례의 물리적 증거라고 보는 교리는 아주 중요한 교리 중에 하나입니다. [1] 이 에세이의 목적은 먼저 누가와 사도 바울의 관점에서 방언에서의 성령의 역할을 탐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누가와 바울이 쓴 정경에 대한 신학적 탐구를 근거로 하여 '방언이 오늘날의 모든 신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질 수 있는 은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려 합니다.



2. 사도 행전에서 나타난 방언에서의 성령의 역할


누가 복음과 사도행전은 이방인으로 추정되는 데오빌로에게 기독교의 복음의 정의, 정체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목적으로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 저자인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기독교를 매력 있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위해서 빠르게 성장하고 확장하고 있는 기독교에 대한 모습을 알려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2] 그런 면에서 사도 행전에서 누가는 반복적으로 교회의 성장, 역동적인 사역과 확장을 묘사합니다. [3] 누가는 사도 행전 2-4 장에서 예루살렘 교회는 죄(5장), 분열(6장)과 박해(7장)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으며, 핍박, 순교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성령에 의해서 예루살렘으로부터(1장-7장)에서 유대와 사마리아 (8장-12장)를 거쳐 아시아와 유럽으로, 마침내 제국의 중심인 로마까지 (13장-28장)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기독교의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모든 민족의 구원을 위해 전파되고 확장되고 있음을 서술합니다.

이러한 사도행전의 기독교 복음의 운동의 중심에는 성령님이 있습니다. 누가는 먼저 구약의 핵심적인 종말론적 약속이었던 하나님의 영의 임재에 대한 많은 증거를 설명합니다. 복음이 확장되는 주된 동력은 성령의 역동적인 역사에서 있었습니다. 누가 복음과 사도 행전을 연결하는 (누가 복음 24 장과 사도 행전 1-2 장)의 지점에서 그는 세계선교를 위한 성령의 능력의 중요성과 목적을 강조합니다. 제자들은 하늘로부터 임하시는 성령으로 세례(침례)를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누가 복음 24:49; 행 1: 8) [5] 도입 부분이 되는 1장 8절은 사도행전 전체에 핵심이 되는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오실 때 능력이 함께 임하여 제자들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이 예수의 제자들이 증인으로 예수를 증거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모든 사역을 위한 능력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6] 성령님은 지역,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예언적 말씀을 선포할 수 있도록 역사한다는 것을 베드로 사도는 증거합니다. (2:17-18) [7] 구약에서 종말론적 약속에 관한 소망이 신자들에게 성취되어, 성령님은 선교에 대한 예언적 증거를 가능하게 하도록 신자들에게 권능을 부여합니다.


오순절의 성령 강림에 대한 약속에는(1:4-8) 성령의 필요성과 종말론적인 특성, 그리고 예언적 능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요엘 2: 28-32를 인용하여 설교 한 것처럼 (2:17) 성령의 역사는 마지막 날, 즉 종말론적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고, 신자들의 삶에서 구약 시대의 약속이 성취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성령님이 신자들에게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종말론적 임재의 명백한 증거입니다. 구약 성경은 '예언의 영’(2:16-21, 33)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증거할 능력을 주실 것을 약속하시며, 성령이 부어질 것을 기대하도록 우리들의 마음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누가 24:49; 행 1 : 8) [8] 그리고 요엘 서의 약속의 요점은 일부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2:18) 그것은 이스라엘의 소망이었던 하나님의 임재를 그분의 백성에게 영원토록 주시겠다는 약속이 성취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성령이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Menzies는 ‘성령은 거의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의 선포를 위해서만 역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9] 반면에 Atkinson과 Turner는 성령은 기적과 치유 등등 다른 사역을 위해서도 역사하시며, 성령의 역할은 더욱 폭넓고 광범위하게 적용합니다. [10] 두 입장 모두 성령이 사도행전에서 예언적 증거를 위해 신자들에게 능력을 부여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기 위한 성령의 능력과 그 예언적 성취는 사도행전에서 누가가 강조하는 핵심 메시지이며 그런 면에서 '교회와 선교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11] 성령의 새롭고 역동적인 활동이 능력으로 나타날 때 그분의 임재와 그 능력은 눈에 보이는 증거로 나타납니다. 누가에게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사도 행전에 묘사된 증거 ​​중 하나 일뿐입니다. 오순절 날에 임한 방언 은사가 주어진 이유는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다른 많은 지역에서 온 유대인들이 복음을 자기들의 언어로 듣고 이해할 수 있었던 기적적인 능력의 역사였습니다. (2:11) 멘지스는 ‘오순절 날의 방언 은사의 주된 기능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행 2:5) [12] 그에게 있어서 성령의 역할은 오순절 날에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복음이 다른 여러 나라의 말로 선포되는 것과 더 넓은 예언적 기능의 일부로서 선교에 대한 예언적 선포와 증거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더 넓은 맥락을 살펴보면 Turner가 Menzies보다 더 정확할 수 있습니다. Turner가 지적했듯이, 오순절에 '성령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하도록 영감을 줍니다.'[13]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과 그의 역사하심에 대한 경배와 찬양을 위해서 주어지는 초자연적으로 주어지는 언어이며, 사람들을 위한 예언적 선포라기보다는 우선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언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2:4, 11) 오순절 성령강림 때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성령 받은 제자들이 복음을 선포할 때 자신들의 지역 언어로 이해할 수 있었을 때, 자기들의 지역 언어를 배우지 않은 갈릴리 사람들이 그들의 언어로 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따라서 성령은 다양한 지역에서 모인 사람들이 유대인들의 다양한 언어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게 하면서 또한 그 경배와 찬양의 말들이 초자연적으로 들려질 때, 예언적 선포의 효과를 가져다주게 되어 듣는 이들도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영감을 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 행전 10 : 44-46에서 때때로 이방인의 오순절로 알려진 사건으로, 이방인이었던 고넬료와 그의 친척, 친구들이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들을 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할례받은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이 방언으로 말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를 입증하는 증거가 될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사도 행전 15 : 7-9) Witherington 은 고넬료의 이야기에서 방언이 이방인의 언어로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누가는 단순히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의 언어가 그들 자신의 언어로 들려질 때 이는 예언적 선포와 같은 것임을 강조합니다. 역사하시는 성령은 같지만 영감받은 말씀 선포의 내용이 사도행전 2 장의 오순절 사건과 10 장의 고넬료의 사건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14] 그러나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이방인들이 그들의 모국어를 말했다면, 누가는 그들이 방언을 말하는 것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사도 행전 19:6 에서처럼 예언했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언어가 아닌 이방인들의 언어로 베드로와 함께 성령으로 경배하면서 초자연적 성령의 역사로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다른 곳에서 설명했듯이 (19:5-7), 예언이 사람에게 주어진 말씀이고, 방언은 성령이 주시는 하나님을 향해 주어진 초자연적인 말이기 때문에 그것은 서로 다른 은사입니다. (8) 이 모든 것은 그분을 경배하고 그분이 행하신 일을 찬양 할 때 성령께서 주시는 배우지 않은 초자연적으로 주어지는 언어입니다. 이러한 경배와 찬양은 청중의 다양한 언어로 말해졌고, 그들은 자신이 배우지 않은 언어였지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스토리는 누가의 궁극적 관심인 이방인을 향한 복음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5]


사도 행전 19:5-7에 바울은 에베소에서 어떤 제자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그들이 누구의 제자인지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믿는 자라고 여기는 것 같이 보입니다. (2) 하지만 그들은 요한의 침례에 대해서만 알고 성령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습니다. (3). Dunn은 바울이 그들에게 성령을 믿을 때 받았는지 물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2) 바울은 여기서 '에베소 인들이 사역할 준비를 갖추도록 돕는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에 Keener에 따르면, 그들은 침례 요한이나 유대인의 제자 일 가능성이 낮습니다. 왜냐하면 누가 복음에 침례 요한은 성령의 종말론적 임재와 충만함에 관한 설교를 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눅 3:16, 행 1: 4-5), [16] 고대 유대교인들은 성령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17] 에베소의 사람들이 어떤 제자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바울이 성령에 대한 지식도 없이 침례 요한의 침례만을 들었던 이방인 그룹을 만났기 때문에 분명 이것은 타 문화 선교 (cross-cultural mission)의 상황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열두 사람에게 침례를 주고 그들에게 안수했습니다. 성령이 그때 그들에게 임하셨고 그들은 방언과 예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오순절에 제자들과 사도 행전 2, 10 장에 있는 고넬료의 집에서 나타난 것과 동일한 성령 침례의 증거를 경험했습니다. Stronstad의 견해에 따르면 누가는 '열두 사람이 방언을 말하고 예언을 한 것은 두 가지가 아니라 하나의 활동입니다. 즉, 누가는 에베소 사람들이 방언을 말한 것을 예언을 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8] 더 넓은 성경적 맥락에서 성령이 방언과 예언을 말할 때 두 가지 은사는 서로 다른 활동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Keener가 지적했듯이 2:11, 10:46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주어진 방언은 분명히 예언과 구별됩니다. [19] 누가는 타 문화 간 선교의 맥락에서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부터 에베소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사건은 일관된 패턴으로 보는 타당해 보입니다. 성령은 사도행전 전체의 이야기에서 복음의 증거를 위해서 지속적으로 예언 적 예배와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역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는 성령께서 성도들이 하나님을 예배할 때 방언으로 하나님께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며, 이것을 목격한 청중들이 초자연적인 역사로 자신의 언어로 듣게 될 때 예언 은사와 같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제안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타 문화 선교의 상황에서 언어의 장벽을 넘어 효과적인 복음 증거를 위한 성령의 역사로 볼 수 있습니다. [20]



3. 바울 서신에 나타난 방언 은사에서의 성령의 역할


누가는 성령을 선교를 위한 능력의 근원으로 일관되게 묘사하는 반면, 바울은 구원에 필수적인 (로마서 8 : 9) 칭의, 성화 그리고 영화(고전 6 : 1)에 필수적인 신자들에게 성령의 역할에 대한 구원론적 측면을 제시합니다. (11)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교회의 여러 상황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누가는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통한 예언적 예배와 기도가 복음 증거와 타문화 선교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것임을 강조하는 반면, 바울은 교회의 예배의 맥락 (context)에서 방언 은사를 설명합니다.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바울 서신의 고린도 전서에서만 구체적으로 언급됩니다. 이것은 주로 매우 특정한 교회의 문제를 다루기 위한 서신입니다. 바울은 본질적으로 '고린도 교회의 내적 분열과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전체에 걸쳐 말하고 있는 그의 초점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특정 질문과 다양한 문제에 응답'하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에 두고 있습니다. [21]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신학적 또는 경험적 결함이 있는 문제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22] 고린도 전서 12-14 장에서 성령의 은사가 어떻게 모든 사람을 유익되게 하는 성령의 나타나심인지를 설명하며, 이러한 은사는 공동체를 위한 사랑의 맥락에서만 사용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13)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질서 있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14) [23] 바울은 공동 예배의 맥락에서 특정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적용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은사를 언급합니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12 : 1)


고린도 사람들은 교회의 여러 이슈들에 대한 질문을 한 것으로 보이며 바울은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서신을 통해서 그 문제들을 다룬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초점을 맞추는 주요 문제는 교회의 회중 예배의 맥락에서 방언을 남용하는 문제를 다루기 위한 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14 장에서 방언과 예언에 관한 특정 문제를 다루기 전에 12 장에서 그리스도의 다양한 몸인 교회에서 성령의 은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일반적인 지침을 제공합니다. 13장에서는 은사가 교회의 지체들을 섬기기 위해서 사랑으로 사용돼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논증의 흐름이 일반에서 더 구체적으로 이동함에 따라 바울은 특히 14 장에서 방언과 예언이라는 두 가지 은사의 주요 쟁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24]


Dunn은 고린도 전서 12:13을 언급하면서 바울이 성령으로 침례를 받는 것을 개인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는 수단으로 생각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 영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한 몸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25] 그리고 이것은 로마서 8:9의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성령이 성도들 안에 거하기 때문에 성도는 성령 안에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 점에서 성령의 은사는 성령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의 몸의 공동의 유익을 위해서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나타나심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8-11) 방언의 은사는 성령의 현현 중 하나입니다. 영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각 지체들은 온몸의 유익을 위해 서로 봉사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몸을 자신의 신체를 비유로 설명할 때, '모든 사람이 방언을 합니까?' (고린도 전서 12:20)라는 논쟁적인 질문에 대한 응답에 대해 그의 대답은 '아니오'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교회의 예배를 위한 사역의 관점에서 은사 행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12:28) 그러나 앞의 구절이 말하듯 몸을 은유적(12 : 12-27)으로 사용하여 교회를 위해서 은사를 사용할 때는 우리 모두가 교회를 위한 사역의 기능으로 방언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Menzies가 지적했듯이 여기서 바울의 의도는 개인적인 은사의 표현과는 대조적으로 방언 은사의 공동체 사역을 위한 직임으로의 은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12장에서 아직 '방언의 개인적인 표현'에 대해 논의하고 있지 않지만 [26], 고린도 전서 14 장에서는 그러한 측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은 일반적이고 공동체적인 맥락에서 (12장)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측면 (14 장)의 은사의 사용에 대한 설명을 더해갑니다. 이런 면에서 ‘다 방언을 말하겠느냐’라는 질문 (12:30b)은 교회의 회중 예배의 상황에서 교회를 섬기는 직임으로서의 방언 은사에 관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서 주어지는 기도를 위한 방언 은사와 직임으로서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주어지는 방언 은사는 그 사용되는 상황과 목적이 다릅니다. 바울은 분명 교회를 섬기기 위한 직임으로서의 방언은 사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언은 회중 예배에서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방언은 사람에게 말하지 않고 직접 하나님에게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방언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방언은 영으로 비밀(mystery)을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14:2-3) 따라서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기도의 한 형태'[27]이며, 방언 기도는 그 사람의 내면을 견고하게 세웁니다. 따라서 방언을 통해서 주어지는 말을 통해 성령의 역사가 드러나는 것이며(12 : 7-11), [28] 신자들은 '성령에 의해' 비밀한 것들을 하나님께 직접 말하는 것입니다. [29] 성령은 성도들에게 그러한 방언의 은사를 나타내는 능력의 원천입니다. '고린도 전서 2:10-12에서 바울이 말하는 비밀한 것은 하나님의 깊은 것에 대해 말하는 것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30] 바울이 원래 이 구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성령에 의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는 영이 있으며, 하나님께서 계시하실 모든 것은 영을 통해서 주어집니다. (고전 2 : 1-16) [31] 바울은 비밀(Mystery)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관련하여 설명합니다. (2:1-3) Gordon Fee가 지적했듯이, 비밀이라는 용어는 '이전에는 모든 사람에게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 안에 비밀한 것들이 이제는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고 영을 통해 그의 백성이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32] 이 말씀은 고린도 전서 14:2에 나오는 방언 은사를 통해 말해지는 비밀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숨겨진 비밀을 드러내셨듯이 (2:10), 성령은 신자의 덕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의 깊은 것, 그리스도에 대한 숨겨진 진리를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교회의 회중 예배에 각 사람을 세우는 일을 하시는 것처럼, 방언 기도를 통해 각 성도들을 격려하고 위로함으로 견고하게 영적으로 세워줍니다. (14 : 4) 그러므로 성령은 각 성도들의 덕을 세우기 위해 방언으로 비밀한 것을 말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고 영감을 줍니다. 그들은 성령을 통한 하나님과의 교통을 통해서 영적으로 견고해집니다. 이것은 바울이 말한 것처럼 “내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내 영은 기도하지만 내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라고 말했듯이 방언은 지각적 이해가 필요 없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영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14) 하지만 ‘방언 기도의 주체는 영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 자신’입니다. [33] 다만 방언을 말하는 자는 성령의 도움, 능력, 영감을 받아 자신이 하고자 할 때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4. '오늘날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모든 신자들에게 보편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이 섹션에서 저는 누가 와 바울의 관점에서 '오늘날에도 모든 신자들이 방언을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오순절 교단은 '방언을 말하는 것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았다는 최초의 물리적 증거'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 이 문제는 아주 중요한 교리적 문제입니다. [34] 오순절 학자 Menzies가 지적했듯이, '오순절 주의자들은 사도행전의 다양한 기록이 기독교 경험에 대한 일반적 패턴을 제시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일반적으로 성령 침례의 물리적 증거로서의 방언의 교리를 지지해 왔습니다.' [35] 그에게 성령 침례의 의미는 '선교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36] 하지만 어떤 사건이 모든 시대와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인 패턴이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상황 안에 나타난 의도와 관련이 있어야 한다'라고 Gordon Fee는 지적합니다. Fee는 '누가의 주된 의도가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이방 세계에 전파 됨에 따라 기독교인이 되는 경험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누가의 사도행전의 사건들이 모든 시대와 상황에서 가능한 일반적 패턴의 모델을 제시하려 했던 것인지는 입증할 수 없습니다.'[38] 이런 점에서 모든 신자가 사도 행전의 기록에 근거하여 오순절에 따른 성령 침례의 첫 표징으로 방언을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장된 말일 것입니다.


나는 바울이 '여러분 모두가 방언을 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할 때 '모든 그리스도인이 방언 은사를 통해서 덕을 세울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14:5에서 언급한 '내가 너희 모두보다 방언을 더 많이 말함을 하나님께 감사한다'라는 말은 바울이 방언의 개인적인 기도를 통해서 모든 성도들이 덕이 세워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모든 교인들이 방언을 말하기를 원한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40]


로마서 8 : 26-27의 구절이 바울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과 직접 관련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지만, 우리는 방언으로 기도함으로써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는지에 대한 진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성령은 신자들이 ‘아바 아버지’라 하나님을 부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로마서 8:16) '양자의 영 이신 성령은 성도들의 기도를 돕습니다.’[41] 기도의 언어뿐만 아니라 무엇을 기도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영감을 줍니다. (로마서 8:26).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과 신자들 사이의 사랑의 소통 수단입니다.'[42] 이것은 고린도 전서 14: 2에서 바울이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말한다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아무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성도들 안에서 기도할 수 있도록 도우시고, 로마서 8:26-27에 언급했듯이 신자들을 통해 하나님께 말씀하시는 것처럼'[43] 성령은 인간의 지성을 넘어서 역사하는 방언을 통해 하나님에게 그 비밀을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신자들을 사랑하시고 성령을 통해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갖기를 원하시므로 성령께서 하나님의 은밀한 것까지도 드러내는 방언을 통해 모든 신자들을 위해 아버지와 사랑의 관계를 맺고자 하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합리적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신자들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안에서 더욱 친밀한 교제를 갖기 위한 방언 기도를 통해서 성령으로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자들의 덕을 세우고, 아버지와의 사랑의 관계를 위해 방언으로 기도하기를 바라십니까?' 이것은 바울이 '내가 너희 모두가 방언을 말하길 바란다'라는 사도적 소망과 일치하는 것입니까? (14 : 5)


방언의 은사에 대한 이유는 성경에서 명확하고 일관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기도의 은사를 일부 신자들에게는 주지 않으실 이유를 찾기가 더 어렵습니다.



5. 결론


구약의 소망에 대한 종말론적 약속이 새 언약에서 성취됨에 따라, 누가는 성령은 선교를 위한 예언적 증거를 가능하게 하는 능력의 근원입니다. 성령은 신자들이 예언적인 선포와 함께 하나님께 직접 비밀한 것을 말할 수 있는 방언 기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사도행전에서 누가의 관심은 복음의 확장과 교회의 성장이기 때문에 방언은 그러한 선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타 문화 선교의 맥락에서 나타납니다. 바울에 따르면, 성령은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기도로서의 방언을 위해서 역사하시며 영감을 주시지만, 회중 예배에서도 또한 방언 은사는 사용될 수 있습니다. 특히 바울에게는 성령께서 방언 기도를 통해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드러내셔서 성도 개인을 세우시고, 통역이 되어질 때는 교회를 세우는 목적을 위해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와 바울 모두에게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성령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기 위한 초자연적이며 배우지 않은 언어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위해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선교를 위해서 그의 교회에 덕을 세우고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예언적인 기도와 예배를 할 수 있도록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1]Menzies, Spirit and Power, 121.

[2]Witherington, Acts, 76.

[3]Witherington, 74.

[4]Wright, King, 233.

[5] Turner, ‘The Work of the Holy Spirit’, 148.

[6] Menzies, Empowered for Witness, 114.

[7] Keener, ‘Empowerment’, 180-181.

[8] Turner, ‘the Holy Spirit’, 149.

[9] Menzies, Witness, 113.

[10] Atkinson, Baptism in the Spirit, 91, Turner, ‘the Holy Spirit’, 148-149.

[11] Keener, ‘Pentecost’, 59.

[12] Menzies, Witness, 177.

[13] Turner, ‘the Holy Spirit’, 149.

[14] Witherington, The Acts, 360.

[15] Bock, Acts, 100.

[16] Keener, Acts, n.p

[17] Keener, n.p.

[18] Stronstad, The Charismatic Theology, 80.

[19] Keener, Acts, n.p.

[20] Keener, ‘Pentecost’, 59.

[21] Witherington, Community in Corinth, 73-77.

[22] Fee, ‘Tongues’, 4.

[23] Grudem, The Gift of Prophecy, 52-53.

[24] Witherington, Community, 274-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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