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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의 선교? 사도행전적 교회의 선교를 향하여

RETHINK 시리즈

by 조셉 선교사 2020. 9. 28.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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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의 선교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하나님은 이 문제에 대해서 무엇을 말씀하실까? 오늘 나의 마음 속에 맴도는 질문이다.


사도행전의 모든 사역의 주체는 초대교회 안에서 역사하신 성령님이셨다. 모든 성도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역동적으로 그들 가운데 역사하시므로 사도행전에 위대한 역사가 가능했다. 사도들은 그들이 전했던 그리스도 중심의 복음 메세지를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고 영광의 소망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도록 인도했다.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신 그 분은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을 통해서 역동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도록 역사하셨다.


오늘 날 다시 한번 성령님의 역동적인 역사를 제한 하지 않고 따라가기 위해서 우리는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의지했던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그리고 그것이 가능할 수 있게 했던 그들이 전했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우리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 이 시대의 교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복음의 메세지가 그리스도께 집중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교회의 사역과 선교가 우리 안에 모든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주체가 되시는 성령님에 의해서 주도되기 보다는 교회의 위원회, 행정, 조직과 전통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교회의 경영을 위해서 유익한 것이나 이 모든 것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 의한 사역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한 보조적 도구로 존재해야하지 모든 사역을 통제하는 형태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복음의 확장과 세계 선교의 운동이라는 측면에서 성령께서 사용하셨던 방법은 두 사람의 사도를 따로 팀으로 만들어 보내시는 것이었다. 안디옥 교회에서 성령님에 의해서 부름받고 파송된 바나바와 바울의 사도적 선교 팀은 안디옥 교회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사역자였다. 바나바는 이미 예루살렘에서 파송된 사도이며 담임 목사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고, 바울은 탁월한 교사이며 선지자로 두 사람의 사역의 영향력 아래 안디옥 교회는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이라고 이방인들이 오히려 그들을 불러 주는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되었다. 그들을 통해서 이루어진 선교와 부흥의 역사는 분명 숫자적 성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숫자적으로도 성장해 갔지만 그들의 삶과 성품의 변화는 그들의 매일 일상에서 삶 속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하면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던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선교의 열매이며 교회의 부흥이다. 그러한 양적 질적 성장과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로 성장하도록 이끈 바나바와 바울을 이제는 이방인의 선교를 위한 팀을 만들어 파송하라는 명령을 안디옥 교회의 모든 리더십들이 예배와 기도로 하나님을 섬기는 가운데 모두가 동일하게 들었다. 모든 리더십 팀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며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모든 리더십 들이 동일하게 성령님의 음성을 들었고 순종했다는 것도 나에게는 놀라운 일이다.이러한 교회와 리더십 팀이 있다면 교회에 권위주의적 조직 질서와 행정 시스템에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한 팀이 기도하며 하나되어 성령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듣고 순종한다면 교회의 분란이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항상 이런 교회와 선교팀과 리더십 팀을 꿈꿔왔고, 때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너무나 이상적인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낙심하기도 했었다. 나도 선교를 위해서 파송 받는 과정을 거쳐 선교사가 되었고, 지금은 담임목사로써 교회를 섬기고 있지만 안디옥 교회에 모습은 나에게 참으로 놀라움을 준다. 먼저는 초대 교회의 리더십은 언제나 복수 리더십이었고 엄격한 위계질서의 조직체가 아니라 각자의 은사와 역할을 따라 교회를 섬기는 수평적인 공동체였다. 안디옥교회 리더십 팀들에는 선지자들, 교사들, 그리고 목사의 역할을 감당하는 다양한 리더십의 형태가 있었다. 이는 에베소서 4장에 흔히 오중직임이라고 알려진 다양한 교회의 사역 형태에 따른 리더십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교회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계시며 성령님이 복수의 교회 리더십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그들을 듣고 순종하며 섬기는 진정 종의 리더십의 모습을 보여었다. 담임 목사 한명의 지시에 의해서 통제되고 성령님의 명령과 인도하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위원회 등의 행정 체계에 의해서 움직이는 오늘 날의 교회와 선교의 조직 시스템은 안디옥 교회와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교회, 선교 리더십 체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가장 영향력이 있고 활발하게 사역을 하고 있던 담임목사였던 바나바, 교사 선지자였던 바울 사역자를 선교로 파송하는 것도 놀랍다. 나는 이러한 모습을 아직까지는 본적이 없다. 교회에서는 보통 뛰어난 사역자들이나 교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을 교회에 붙들어 두려고 하지 어딘가로 파송하는 것을 꺼린다. 물론 전 세계 파송되어 사역하는 선교사님들이 이런 의미로 이류 사역자라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위한 다양한 선교 사역이나 새로운 교회 개척을 위해서 누군가를 아낌없이 보내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교회가 순수하게 큰 인적 물적 손해를 감당하면서까지 선교와 교회 개척팀을 보내는 것을 나는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보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때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팀으로 움직일 때도 있지만 두 사람의 사도를 보내듯 선교사를 보내는 이 원칙은 오늘날에도 성령께서 쓰시는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방법인 듯하다. 그러면 더 하나가 되어 성령님을 의지하고 함께 듣고 역동적으로 움직여 가는 것이 쉬울지도 모른다. 두 명씩 사도들을 전도 여행에 보내시는 것으로 시작으로, 사마리아에도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교회에 의해서 보내졌고, 안디옥 교회도 이방인의 선교를 위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바나바와 바울을 파송했다. 요한 웨슬레도 그 옆에는 찰스 웨슬레가 있었고, 무디에게는 생키가 있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기대하는 성령의 역동적인 전도와 선교의 사역은 이렇게 성령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소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선교팀을 성령님의 부르심과 보내심을 따라 파송하는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야 할 것이다. 사람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두세 명일지라도 그리스도의 사랑,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분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이끌리는 사람을 세우고 파송하는 사역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성령께서 그들을 인도하시며 복음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그들을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쓰실 수 있을 것이다.




성령님이 세우시고 주도하시는 교회와 선교사역이 되게 하소서! 사람이 만들어낸 전통과 조직과 방법이 아닌 성령님이 전적으로 주도하시고 역사하시는 교회, 선교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의 세대 속에 사도행전과 교회사 속에 있었던 하나님의 영광스런 교회의 부흥과 선교의 운동이 이 세대에 다시 일어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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