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의 심판으로부터 노아의 가족은 구원을 받았다. 믿음의 사람인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방주를 지어 가족들을 구원함으로 믿음의 후사들에게 본을 보여주었다. 노아의 가족으로부터 새롭게 시작된 인류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기대하셨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류를 회복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대로 생육하여 번성하되, 그분의 성품을 따라 세상을 다스리는 삶을 살기를 기대하셨다.
그러나 노아의 가족으로부터 시작된 인류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하나님을 떠났다.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름을 위하여 바벨탑을 쌓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물로 다시는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지만 그들은 그 말씀을 믿지 않았다. 바벨탑을 하늘 높이 쌓아 물의 심판이 다시 온다 해도 피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하나님은 서로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게 하심으로 온 세상에 흩어져 가게 하셨다.
끝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류, 그러나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계속되었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 지역의 아브람을 부르셨다. 비록 44천 년 전의 시대이지만, 아브라함은 벽돌로 지은 집, 위층에 사랑스러운 화로와 침실이 있는 2층짜리 벽돌집에 살고 있었다. 그런 편안하고 아름다운 벽돌집에 살고 있던 아브람을 하나님은 알지도 못하는 땅을 향해 가라고 말씀하셨다. 편안한 집에 살고 있는 아브람이었지만, 알지 못하는 땅에서 텐트를 치고 살아야 했다.
멀리 한 번도 가본 적도 없는 곳에서, 친구들과 친척들을 떠나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그렇게 살았다. 그런 아브라함을 우리 모두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고 있다. 75세의 나이이지만 그는 하나님을 따라 긴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아내도 그들이 본 적이 없는 곳으로 갔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길을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와 언약을 맺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놀라운 언약이었다.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을 특별한 백성으로 선택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닌 ‘선택의 언약’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3대에 걸친 사람들과 언약을 반복하셨다. 하나님은 왜 그들을 선택하셨을까? 그들이 누구보다 좋았기 때문이었을까?
그들은 사실 보통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존경받을 만한 좋은 사람들도 아니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자신의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사람들에게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야곱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형과 삼촌 라반을 속였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 나타나는 독특한 특징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다. 그 믿음의 순종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과 관계를 맺으셨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들의 세 이름을 취하셔서 항상 자신의 이름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 부르셨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기업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하나님은 약속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 땅을 이 세상 한복판에 영원히 남겨둘 것이다.’ 그들은 한 번도 생전에 실제로 그 땅을 소유한 적이 없었지만, 유언으로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그들은 대대로 그 땅의 소유권을 물려주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하나님께 영원히 속해 있다. 하나님께서 세 사람과 그들의 자손을 선택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후손을 줄 것이며, 그들이 영원히 살 수 있는 땅을 줄 것이다. (창세기 15:18-21) 그것은 이스라엘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며, 그가 일하는 방식이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의 영혼들을 축복하기 위하여 한 사람을 선택하고, 그 한 사람을 통해 다른 모든 사람들을 축복하기로 정하셨다. 만일 당신이 가족들 모두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려 한다고 생각해 보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데리고 가서 사주는 것과 한 사람을 택해서 아이스크림을 모두 사주고 나누어 주게 할 수도 있다. 하나님은 한 사람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 이스라엘 민족을 택해서 모든 인류에게 축복을 나누어 주기로 결정하셨다. 그것은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대로 유대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우리 이방인들은 그들에게 많은 빚을 졌다. 성경, 선지자, 사도들과 예수님까지 모두 유대인이었다. 하지만 교회사를 보면 많은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을 무시하고 핍박했다. 유대인들은 무슬림 국가에서보다 기독교 국가에서 더 많은 고통을 겪었다. 절반은 개신교이고 나머지는 카톨릭이었던 국가에서 600만의 유대인들이 희생되는 '홀로코스트'가 일어났다.
아브라함의 언약을 통해서 그의 후손 이스라엘이 축복을 받았다. 또한 그들을 통해서 인류의 모든 사람이 축복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은 축복도 하시고, 저주도 하신다. 아브라함의 언약이 유대인들에게 이루어진 것보다 지구의 모든 민족이 더욱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창세기 12:3)
하나님은 그의 언약을 따라 축복하고, 그 언약대로 저주도 하시는 하나님이다. 은혜의 하나님이고,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다.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는 하나님이다. 그는 치료하기도 하지만, 죽이기도 한다. 우리는 그가 하신 언약을 따라 행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고대 시대에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언약의 개념이 존재했다. 두 언약의 동반자가 언약을 맺을 때 동물을 가져와서 두 조각을 내고 피를 흘리는 그 동물의 두 사체 사이를 지나가는 피의 언약식을 행한다. 이러한 언약식의 의미는 언약의 동반자를 위해서 이렇게 피 흘리기까지 싸울 것이며, 언약의 관계를 깨는 사람은 이렇게 동물과 같이 죽어도 마땅하다는 것을 서로 간에 맹세하는 것이다. 이 언약은 절대로 깨질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피로 맺은 언약의 관계는 관심이 사라지고 이해관계가 바뀌면 깨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피를 나누며, 생명을 걸고 맺은 영구적인 관계이다. 내가 받은 축복, 명예, 소유한 것과 목숨까지도 함께 나눈다. 전쟁이 발생하여 언약의 파트너가 공격을 받게 되면, 피 흘리기까지 함께 싸운다. 함께 서로를 위해서 싸우다가 언약의 파트너가 죽으면, 그를 대신해서 그의 가족들을 위해 싸우며 돌본다.
결혼은 이러한 언약의 관계를 맺는 것이며, 배우자의 필요가 나의 필요이며, 그가 가진 소유, 아픔, 슬픔 등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한다. 서로가 책임을 짓는 관계가 바로 언약의 관계이다. 언약은 성경을 이해하는 문을 여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언약은 두 사람 혹은 두 공동체를 결속하는 동의(Binding Agreement)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언약은 서로 간에 약속과 위탁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아주 엄숙한 서로 간의 의무를 동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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