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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여는 'KEY' 노트

1. 창세기 [책별로 시간순서를 따라 배경(context)을 이해하며 성경읽기]

창세기


1. 배경 (Context)


  성경의 가장 첫 번째 책 인 창세기는 책의 이름이 말해주듯이 세상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시작이 어떻게 되었는 지를 보여줍니다. 창세기는 이 세상의 어떠한 역사 책으로도 알 수 없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보여주고 있으며, 가장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은 현 세상의 끝과 그 이후에 펼쳐질 영원한 세계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이렇게 성경은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그의 시각으로 쓰여진 책이기에 이 세상의 어떤 책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책입니다. 그리고 그 첫번째 책인 창세기는 모든 것의 시작을 이야기 하고 있는 만큼 그 중요성이 아주 큰 책입니다. 창세기의 저자는 모세오경 전체를 저술한 모세입니다. 애굽의 노예로 400여 년을 살아오다가 해방되어 하나님이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약속의 땅을 향해 가면서 그들은 그들 민족의 뿌리와 정체성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필요 속에서 저자인 모세는 창세기 1장 2장의 창조에 관한 내용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내용을 기록한 것이고, 3장부터 50장까지의 내용들은 아마도 오랜 역사를 거쳐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던 이야기들을 종합적으로 재구성하여 창세기를 쓸 수 있었을 것입니다. 



2. ‘KEY’ 노트 

  

  성경 전체는 크게 두 가지의 흐름으로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에 의해 아름답게 창조 된 이 세상이 왜, 어떻게 잘 못되어 가는지, 그리고 이러한 잘 못된 세상을 하나님은 어떻게 회복시켜 가는 지를 보여줍니다. 창세기는 그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나타내며, 성경 전체는 죄악 된 인간 세상을 어떻게 바로잡고 그 죄악으로부터 구원해가는 지를 보여주는 한편의 구원의 드라마와 같습니다. 창세기는 그 장엄한 드라마의 시작을 소개하며 앞으로 어떻게 그 스토리가 전개되어 갈지 암시해 줍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아름답게 창조된 이 세상과 사람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로 타락과 멸망의 길을 가게 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 공동체, 문화, 경제, 농업, 예술, 건축, 예배와 같은 모든 깨어진 창조의 세계를 구속 (Redemption)하고 회복 (Restoration)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Salvation)의 역사를 펼쳐 가십니다. 또한 우리는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에서 인류 구원의 역사의 최종적인 완성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새로운 창조물을 통해서 완전히 재현될 것이며,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 자신은 새롭게 창조된 인류의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고,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세상을 다스리게 됩니다. (요한 계시록 21:1-3, 22:5) 

 

1. 창조 (Creation): 1장 - 2장 

 온 세상은 하나님에 의해서 그의 목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이 동일한 창조의 이야기가 반복되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창조의 기록이라면, 창세기 2장은 그 창조된 세상의 중심에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는 세상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즉, 1장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수직적 관계를 말하고 있고, 2장에서는 아담의 눈을 통해서 본 수평적인 자연 만물과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이 세상은 진화론자들이 말하듯 우연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분에 세밀한 계획과 질서에 따라서 아름답게 창조되었습니다.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는 우주와 빛을 창조하시 것을 시작으로 둘째 날에는 하늘과 바다를 세째 날에는 땅과 식물을 만드시면서 공간을 먼저 만드십니다. 그리고 넷째 날부터는 차례로 해와 달과 별을 우주의 공간에 만들어서 채우시고, 다섯째 날에는 하늘의 새를 바다에 물고기들을 만드십니다. 여섯째 날에는 땅에 동물들과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신다. 모든 창조물들을 만드시면서 보기에 좋으셨다고 감탄하시지만, 특별히 마지막 사람을 지으시고는 보시기에 너무 좋았다며 기뻐하신다. 우리 사람은 원숭이가 진화되어진 것이 아니고, 우연히 만들어진 의미 없는 존재도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따라 그분의 형상대로 아름답게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여 다스릴 것을 명령하셔서 이 세상을 인간에게 맡기십니다. 시편 기자가 ‘하늘은 여호와의 속한 것일지라도, 땅은 사람에게 주셨도다’ (시편 115:16) 라고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의 왕이시지만, 놀랍게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든 사람을 통해서 창조하신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이렇게 아담은 온 땅에 충만하여 나머지 창조물을 다스리라는 사명을 받아 (창 1:28), 창조된 질서 내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권위 (Authority)를 가지고 맡겨 주신 에덴 동산을 가꾸고 돌보는 일을 합니다. (창 2:15) 사람은 하나님 자신의 창조하신 목적에 의해서 지구상에 존재하며 이 세상을 돌보고 보존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는 생태계를 돌보는 것뿐 아니라, 경제 활동, 교환 및 무역, 문화의 영역 등을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을 포함합니다. 



2. 인류의 죄와 타락 그리고 심판 (The Fall):  3장 - 11장


    창세기 3장부터는 완전히 상반되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의 세계는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의 죄로 인해서 파괴되기 시작합니다.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Tree of life)와 선악을 아는 지식 나무(Tree of Knowledge)이 있었는데, 하나님은 지식 나무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단은 뱀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는 반대로 지식나무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말씀하신 대로 하지 말고, 먹지 말라 하신 지식의 나무를 먹어야 하나님처럼 죽지 않는 영원한 삶을 살 것이며, 또한 눈이 밝아져서 선악을 알게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죽음도 의미했습니다. 결국에는 육체적인 죽음에 이르게 되었지만 지식나무의 열매를 먹은 결과로 아담과 하와에게 먼저 일어난 것은 영적인 죽음 (spiritual death)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로 말미암아 그로부터 오는 모든 생명의 공급이 중단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과 그로부터 오는 생명이 중단된 상태를 '죽음'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떠나 영적인 죽음이 오는 그 순간 우리의 삶에 속한 모든 것이 함께 시들어가며 죽어가게 됩니다. 이것은 부부관계, 가족, 사업, 학업, 진로 등 삶의 모든 영역에 해당됩니다. 이렇게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해서 정반대로 우리에게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이미 죽음이 없는 영원한 삶을 사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사단의 거짓말에 미혹되어, 그들은 이미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것을 감사하고 주신 말씀을 신뢰하며 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말씀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받아들여, 더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 지식 나무를 먹었던 것입니다. 사단의 말을 듣자 미래에 있지도 않을 죽음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생기면서 하나님이 이미 주신 것을 감사하며 예배하고, 그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잃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따라서 결정하여 행함으로 주신 모든 것을 잃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인데 그러한 생각을 준 것이 사단이었습니다. 지식나무를 먹고 죽음에 이르는 삶은 내 자아를 따라 나의 생각과 감정의 판단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이러한 삶의 중심에는 여전히 내가 중심이 되어있고, 우리가 보는 것 느끼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그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 사단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눈과 귀를 잘 관리해서 보고 듣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따라 잘 분변해서 살아야 하며, 내가 보고 느낀 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삶은 우리를 죽음과 파멸의 길로 인도합니다.  생명나무를 취하는 삶은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가, 주신 것에 감사와 찬양으로 예배하는 삶을 살며, 그분의 음성을 따라, 그 말씀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삶의 중심에는 내가 아닌 하나님이 계시며,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이끌어 가시는 삶을 의미합니다. 


노아와 홍수심판    

이렇게 아담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수행하는 것에 철저히 실패합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후로 아름다운 세상의 환경들은 가시 엉겅퀴가 나고 너무나 살기 힘든 모습으로 변질되어 갑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류는 무섭게 타락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를 대신하는 우상의 문화를 만들어 갑니다. 아담과 하와는 서로의 죄를 남에게 탓하며 부부간의 불화가 시작되고, 그의 자녀들 간에는 서로를 시기 질투하는 가운데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암매장하는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이 가정내에 일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가정은 철저히 파괴됩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 ‘에녹’이라는 인류 역사의 첫 도시를 만들고, 그 곳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문명 사회를 건설합니다. 도시 문명의 시작은 하나님 없이 인간들이 원하는 사회, 자신들만의 즐거움을 누리며 살려는 목적을 가지고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한 것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사람을 만들었던 것을 후회하며 슬퍼합니다. 그리고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여 멸할 것을 계획하시고 그 시대의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었던 의인 노아를 부르셔서 방주를 지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까지 세상에는 비가 온 적이 한 번도 없었으나,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홍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방주를 100여년간 만들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다 미쳤다고 했을 것이나, 그는 자신에게 하신 하나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방주를 예비함으로 장차 올 심판을 대비하여 그와 그의 8명의 식구가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방주가 완성되었을 때 비가 내리고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됩니다. 방주 안에 있는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을 제외하고 지 모두 멸망하게 되고 하나님은 노아의 식구들을 통해서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다시 시작해 가십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내린 후 정결한 짐승으로 번제를 드리는데 이런 노아에게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않으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빛과 물이 만날 때 생기는 무지개를 언약의 표시로 보여주십니다. 이는 세상에 살아가는 생물들에게 생명의 근원이 되는 빛과 물을 공급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영원한 언약의 증거였습니다. (창 9:11-17)  


바벨탑 사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아담에게 주어졌던 위임 명령은 이제 노아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후손들 중에 일부는 바벨 지역에 모여 그들의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서 탑을 쌓습니다. 이는 스스로를 높이고자 하는 교만과 온 땅에 충만하여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에서 비롯된 것이며, 또한 홍수로 다시는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그의 약속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들이 온 지면 곳곳에 퍼져서 하나님이 베푸신 축복을 나타내며 세상을 돌보기를 원하셨지만, 그들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부합니다. 하나님은 그때까지 하나였던 언어를 나누고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셔서 흩어지도록 만듭니다. 범죄하고 타락한 인류를 공의로 심판하셔서 다시 노아의 후손들로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시작하시지만, 바벨탑 사건은 이렇게 교만, 불신과 불순종이라는 타락한 인류에 본성은 바뀌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부패와 타락으로부터 구원하실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 있습니다. 창세기 11장의 족보는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 타락해 가는 세상 속에서 택함 받은 사람들의 계보입니다. 셋, 에녹, 므두셀라 , 라멕, 노아, 셈, 그리고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구원의 계획을 펼쳐 갑니다. 



3. 믿음과 언약의 사람들 (The Faithful and Covenant people): 12장- 50장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드라마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택하심으로 더욱더 구체적으로 전개됩니다. 창세기 11장까지는 하나님의 창조와 인류의 죄로 인한 타락을 중심으로 인류의 일반적인 큰 역사의 흐름을 서술하고 있으나, 12장부터는 타락하는 인류의 역사 가운데서 단 한 사람과 가정의 이야기로 집중된다. 자신의 고향 ‘갈데아 우르’  를 떠나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 순종하였던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성경의 이야기는 전개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택하신 것은 그를 통해서 모든 민족을 축복하고 구원하기 위한 그의 방법이며 계획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약속대로 모든 열방이 축복을 받게 될 것이기에, 하나님의 택하심은 다른 사람과 민족들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을 통해서 모든 민족이 구원의 복을 받게 하기 위한 그의 선교 전략입니다. 먼저 택함 받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의 통로로 살아가야 할 사명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12장 – 24장)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가나안 땅과 후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하나님은 15장에서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하늘에 별들을 보여주시며 그의 자손들이 이 별들과 같이 되리라며 하신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겠다고 다시 한번 말씀하여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그의 믿음을 기뻐하시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겨 주십니다. (15:6)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지는 것은 신약에서만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구약 창세기에서부터 강조되는 성경 전체에 나타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으면서도 그 약속의 증거되는 표시 (sign)를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양, 염소, 비둘기를 가져오게 하시고, 아브라함은 그 동물들을 반으로 토막을 내어 놓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둠이 짙어 지는 가운데 그 동물의 토막 사이로 연기와 횃불이 지나가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는 언약식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고대 시대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언약의 개념이 있었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그 언약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두 언약의 동반자가 언약을 맺을 때 동물을 가져와서 두 조각을 내고 피가 가득한 그 동물의 두 사체 사이를 지나가는 피의 언약식을 행합니다. 이러한 언약의 관계를 맺게 되면, 언약의 파트너 사이에는 자신의 축복, 명예, 소유한 것을 함께 나눕니다. 또한 언약의 동반자는 운명의 공동체가 되어 적에게 공격을 받게 되면, 자신의 가족을 위하듯 언약의 파트너를 보호하기 위해서 피 흘리기까지 함께 싸웁니다.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하며 서로에게 책임을 다하는 관계가 바로 이 언약의 관계입니다. 피의 언약식을 행함으로 언약의 동반자를 위해서 살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피 흘리기까지 싸울 것이며, 이 언약의 관계를 깨는 사람은 이렇게 동물과 같이 죽어도 마땅하다는 것을 서로 간에 맹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런 맹세를 하시면서 피의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아브라함에게 주시며,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룰 것이라며 서약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와 언약을 맺은 언약의 사람들이라는 표시로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할례’ 를 행하게 합니다. (창 17:9-14)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는 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은 백성이라는 증거이며 표시 (sign)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시며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언약의 관계 안에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그가 하신 약속을 기억하게 하는 결혼반지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성경이 그리스도 자신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안에도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습이 예표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하나뿐인 아들 이삭을 모리아 땅에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합니다. (창 22) 그로부터 약 2천년이 지났을 때 모리아 언덕은 골로다라고 불려 지게 되는데 이삭을 바치라 하셨던 동일한 산에 하나님의 유일한 독생자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제물로 바쳐집니다. 이삭이 제물로 바쳐질 때 나이가 30대 초반인 것을 볼 때 33세에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제물로 드려진 예수님의 나이가 33세인 것과 동일한 패턴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실제로 제물로 바치려 칼을 집어 드는 순간 하나님은 그를 멈추게 하고, 미리 준비해 놓으신 가시덤불에 뿔이 걸려 있는 양을 제물로 바치게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그 이후로 나의 친구 (사 41:8, 약 2:23)라고 부르시는 이유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독자를 하나님을 위해서 아낌없이 내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그 어린 양을 이삭을 대신해서 제물로 바치면서 아브라함은 그 장소를 ‘여호와 이레’  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천 년 후에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를 그의 친구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위해서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십니다. 가장 아끼는 독자를 서로를 위해서 내어놓는 경험을 함께 나눔으로써 하나님과 아브라함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 어린 양은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골고다 언덕에 십자가의 제물로 드려질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하나님은 양이 제물로 받쳐진 그 장소에서 하나뿐인 아들 예수를 인류의 속죄의 제물을 위해 준비하실 것을 이미 그가 오시기 2000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이삭과 야곱 (25장 – 36장)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받아,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여 살아갑니다. 극심한 가뭄과 흉년이 들었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랄 땅에 그대로 머물렀습니다. (창 26) 순종하는 이삭의 삶을 하나님은 축복해 주십니다. 이삭이 파는 곳마다 우물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물이 귀한 광야에서 생명과 번영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그의 삶을 축복하십니다. 이삭을 시기한 그랄 백성들은 이삭이 파는 물마다 메워버리지만, 이삭은 싸우지 않고 조용히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 옮겨 다시 우물을 파고 정착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삭에게 나타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약속하시고 그 말씀대로 하나님은 이삭의 삶을 축복합니다. 이삭의 온유함과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는 그의 삶에 감동을 받은 그랄 사람은 브엘세바에 있는 이삭을 찾아와 서로 간에 해하지 않기로 맹세합니다. 

    이삭에게는 아들 쌍둥이 에서와 야곱이 있었습니다. 아내 리브가가 이 아이들을 낳을 때 하나님은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게 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예언의 말씀대로 ‘모든 민족이 너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되리라’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그의 아들 이삭을 통해 야곱에게 유산으로 물려집니다. 장자인 에서는 세상적이고 정욕적인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로 자신에게 주어진 장자권의 축복과 기업을 팥 죽 한 그릇에 동생 야곱에게 팔아버립니다. 하나님은 자연적인 형제의 순서가 아닌 믿음의 사람에게 축복의 유산을 물려 받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통해서 열 두명의 아들들이 태어나게 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의 열 두 지파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창세기에는 믿음과 순종의 사람들의 족보와 불순종과 정욕의 사람들의 족보를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 아벨 옆에는 불순종과 질투로 가득한 가인이 있었고, 순종의 사람 이삭 옆에는 불순종의 아들 이스마엘이 있었습니다. 믿음의 사람 야곱의 형인 에서는 세상의 정욕으로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믿음과 순종의 사람을 택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이루어 갑니다.    

   

요셉 (37장 – 50장)

    창세기의 스토리의 마지막 주인공인 요셉은 야곱의 열 한 번째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으며 자랐습니다. 형들의 시기 질투로 종으로 팔려 애굽으로 가게 되지만, 고난의 종살이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시면서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합니다. 그러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죄수가 되어 감옥살이로 숱한 고난을 겪지만 그 곳에서도 형통하게 하시고 결국 고통의 세월을 이겨내며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 가운데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바로의 꿈을 해석하여 7년의 풍년과 흉년을 예언하고 준비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 시대의 애굽 사람들과 자신의 형제들과 가족들을 구원하며, 애굽으로 인도하는 감동적인 인생 역전의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37장-50장) 십대 어린 나이에 형제들에게 팔려 애굽에서 종으로 보낸 그리움과 서러움이 복 받쳐 눈물을 쏟아내는 요셉. 그러나 형제들에게 원망과 복수가 아닌 용서로 분노의 마음을 극복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이곳에 팔았으나, 나를 이 곳에 보내신 이는 하나님’ (창 45:7-8)이라는 고백은 그가 겪은 배신과 고난의 아픔을 넘어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의 계획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진정 믿음의 사람이며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배반과 고난, 그리고 하나님의 손길로 총리가 되는 영광에 자리 올라 가족과 열방을 구원하는 그의 생애는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영광을 통해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을 예표하며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큰 구원의 계획의 관점으로 볼 때 요셉이 애굽의 종으로 팔려간 사건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4백 년을 지내리라’ (창 15:13)는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자신의 유골을 애굽에서 나갈 때 고향인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는 요셉의 유언 (창 50:24-15)은 언젠가 이스라엘은 애굽을 떠나 하나님이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야 할 것을 알려주는 예언적인 말이었습니다.  



4. ‘KEY’ 포인트


믿음

    하나님은 왜 그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특별히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택하셨을까요? 먼저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이지만, 또한 주목해야 할 점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했기에 그를 택하셨다는 점입니다. 창세기 12장부터 50장까지는 특별히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2장에서 50장까지 전개되는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의 이야기를 보면 세상의 일반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아내 사라가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그로 인해서 애굽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빼앗길 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자기 목숨을 지키고자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는 바람에 애굽에서 바로에게 아내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지만, 아브라함을 대신하여 그의 친구이신 하나님께서 사라를 지켜 주십니다. 그의 아들 이삭도 아버지를 따라 아내 리브가를 같은 이유로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야곱 (의미: 속이는 자)은 그 이름 값을 하 듯 형 에서와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장자권을 받았고, 삼촌 라반을 속여 몰래 가족들을 데리고 도주하는 등 인간적인 잔꾀를 부리며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삶의 대가로 많은 고생을 하기도 하지만, 분노에 찬 형 에서의 복수로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는 절대절명의 위기 앞에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천사와 얍복강 가에서 싸워 이겨 승리자라는 뜻을 가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게 됩니다. 이들 모두다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때로는 인간적인 연약함과 실수도 많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에게 있었던 공통점은 모두 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를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을 찾으시며 기뻐하시고 그들을 의롭게 여겨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을 택하셔서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멋지게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찾으시고, 그 믿음을 존중하며 기뻐하십니다. 


언약

    하나님은 언약의 개념을 제정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과 그 후손 이스라엘을 특별히 보호하시며 함께 하실까요? 그것은 그들이 바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그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도 하실 수 없는 것이 있는 데 바로 그것이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시며 약속하신 대로 자연적으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아브라함 가족에게 아들 이삭을 주시고 그의 아들 야곱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12지파를 이루게 하십니다. 요셉이 비록 형들의 배신으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지만, 언제나 그와 함께 하시며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70명의 가족들이 애굽의 가장 좋은 지역이며 곡창지대인 고센 땅에 정착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 곳에 정착하여 이스라엘은 번창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고 그에게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고 행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관계 안에 있는 사람에게 주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고 이루시는 분입니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대로 하나님은 그의 후손을 통해서 메시야 예수를 보내주시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민족이 복을 얻게 하시므로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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