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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아모스 3장-8장: 책별로 시간 순서를 따라 배경(context)을 이해하며 성경읽기

성경을 여는 'KEY' 노트

by 조셉 선교사 2020. 11. 25. 22:00

본문

아모스의 세 번의 설교 (3장–8장)



1.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3장-4장)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온 족속을 쳐서 이르시기를' (1)

하나님의 심판이 멸망을 가져오는 이유와 방법을 아모스는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에 중심에는 언제나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경 전반에 걸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부르셔서 그들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하신 분임을 기억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큰 은혜를 경험한 이스라엘의 특권과 이 특권이 가져오는 큰 책임의 관계를 분명하게 연결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특별히 선택된 나라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그러한 택하심의 은혜에 합당한 책임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심각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부르심과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죄악대로 보응하실 것임을 말씀합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7)

분명히 주님은 그분의 종 선지자들에게 그분의 비밀을 밝히지 않는 한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십니다. 사자가 포효할 때 누가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주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누가 예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히 이 구절을 문맥 속에서 볼 때 아모스는 이스라엘에 임할 심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가올 심판에 대한 비밀을 선지자들에게 보여 주셨고,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회개할 모든 기회를 갖도록 그 일이 일어나기 수년 전부터 예언하였습니다.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 (10)’ 에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의 부유하고 강력한 사람들은 자신의 부와 권력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을 압제하고 그들의 소유를 빼앗았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의 죄를 보도록 하나님은 열방의 나라들을 초청하여 그가 이스라엘에 내리실 심판을 이해할 수 있게 하시며, 땅 사면의 대적들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치게 할 것들입니다. 사마리아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은 멸망하여 쫓겨날 것입니다. 이것은 아모스가 예언을 한 지 약 40년도 채 안 되어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였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땅에서 쫓겨나 앗수르 제국의 전역에 흩어졌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보응하는 날에 벧엘의 단들을 벌하여 그 단의 뿔들을 꺾어 땅에 떨어뜨리고 (14)’

하나님은 또한 벧엘의 제단을 무너뜨리며, 우상을 바치는 제단과 그 뿔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파괴될 것입니다. 우상 숭배의 장소를 지을 때 우리는 그것을 파괴하도록 하나님을 초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각 모서리에 있는 제단의 뿔은 뿔이 동물의 힘을 나타내는 것처럼 제단의 위엄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의 제단을 완전히 파괴시킬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우상 숭배 장소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며, 억압과 착취를 통해서 쌓은 그들의 부를 즐기는 호화스러운 집들도 포함될 것입니다. 여로보암 2세 이전 시대까지 이스라엘 도시의 집은 거의 같은 크기였습니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기원전 8 세기부터 변화가 있었음을 발견했습니다. 크고 값비싼 집들이 있는 가하면 그 주변에는 아주 작은 집들이 복잡하게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더 큰 집은 번영의 증거로 온갖 값비싼 것으로 가득 차 있었고 압제적인 이스라엘의 부자들은 그곳은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모스의 예언대로 그러한 집으로 피한다 해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마리아 산에 거하는 바산의 암소들아' (1)

아모스는 선지자로 훈련받은 사람이 아니라 단순한 목동이자 농부였기 때문에 그의 말은 직설적이었고, 또한 동물을 비유적으로 자주 사용합니다. 이스라엘의 부유한 여성들을 ‘살찐 암소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북부에 위치한 바산의 가축은 오늘날의 골란 고원으로 살이 찌고 건강한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이 여성들이 살찌고 부유한 삶을 사는 것은 불우한 사람을 억압하고 그들의 것을 착취하여 부와 풍요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아모스는 그들을 도살장으로 끌려갈 살진 소들로 비유하며, 남자든 여자든 사악하고 게으른 부유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람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을 그리하리라' (2)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정복되고 포로로 가게 될 다가올 심판의 고통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앗수르 인들은 정복한 나라의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갈 때, 그들을 벌거벗기고 아랫입술을 꿰뚫는 끈과 낚싯바늘로 묶어 수백 마일을 동안 포로들을 이동시켰습니다. 이스라엘은 정복된 그들의 도시의 부서진 성벽을 통해 이렇게 굴욕적인 방식으로 끌려가게 되며, 이스라엘의 살찐 암소들은 완전히 겸손하게 낮추어질 것입니다.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 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4)…

이스라엘 왕들은 백성이 남 유다의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벧엘과 길갈과 같은 도시에 자신들의 임의로 제사의 장소를 세웠습니다. 이곳에서 여호 와께 제사를 드리기는 했지만 하나님이 지정하신 장소와 절차가 아닌 제사는 하나님께 죄를 쌓는 행위일 일뿐입니다.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 제로 드리라’'는 것은 누룩으로 오염된 제물을 드리며 기뻐하는 이스라엘을 조롱하기 위해서 그들의 타락한 제물을 가져와 보라고 제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자녀들은 그들의 부패하고 타락한 제사를 드리면서도 그러한 행위를 기뻐했습니다. 마음과 행동으로 불순종하면서, 하나님이 받지 않은 불법의 제사를 드리면서도 그것을 기뻐하고 좋아했다는 것은 우리의 예배가 우리를 기쁘게 하고 있는 지로 측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선적으로 예배는 우리의 느낌보다 하나님이 어떻게 느끼는 지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뭄을 보내서 먹을 것이 없어 이빨이 깨끗해지고, 물이 없어서 이 마을 저 마을 찾아다녀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가장 큰 비극입니다. 누구든지 죄에 빠지고 바로잡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도 여전히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을 때 훨씬 더 큰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메뚜기를 보내어 모든 것을 먹어버리고, 전염병을 보내어 사방에 악취가 나도, 이스라엘이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에 그분의 채찍은 점점 더 강해져 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노여움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징계를 점차적으로 강하게 증가시키며 우리의 마음을 자신에게로 되돌리기 위한 최소한의 징계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며 돌아오는 모습을 보려는 사랑의 소망을 가지고 더 무거운 징계를 보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12)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하나님을 만날 영원한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만, 특히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 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사실입니다.



2.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5장-6장)


아모스는 이스라엘을 타락하고 버림받아 아무도 도울 자가 없는 비극적이고 연약한 젊은 여인과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반역하는 이스라엘은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남자들 사이에 몰려 있는 젊은 여성만큼 무력할 것입니다. 아모스는 상황이 너무나 악화되어 적들이 올 때 이전에는 천 명의 병사를 내보냈던 성읍이 전쟁에 지친 척박 한 소수의 사람들 만이 이스라엘의 군대에 남게 될 것을 예언합니다.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5-6)

이스라엘에게 임한 심판이 무르익게 될 때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생존의 열쇠는 단순히 ‘여호와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벧엘, 길갈, 브엘세바는 한때 큰 특권과 영적 유산과 관련된 장소였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이 야곱을 만난 곳이었습니다 (창 28:11-19, 창 35:1-7). 길갈은 여호수아 시대에 이스라엘의 영적의 수치와 굴욕적인 과거가 모두 사라지게 된 승리의 장소였습니다. (수 5:1-12). 브엘세바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관련된 그들의 영적 유산과 관련되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창 21:22-33, 창 26:23-33, 창 46:1-5). 하지만 이제 그곳은 실제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는 사라지고, 헛된 껍데기만 남은 공허한 제사의 장소가 되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여호와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아모스는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이 맞게 될 다가오는 파멸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 그는 하늘에 빛나는 별자리를 만들고 그들을 다스리며 움직이고 있는 강력하고 지혜로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8) 이것은 하나님이 어떤 상황에서도 그들을 구원할 만큼 강한 분이지만 또한 심판을 하실 때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능력 앞에 설 때 누구도 그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찌어다' (15)

아모스의 시대에 사법적 결정은 각 성의 문 앞에서 내려졌습니다. 가족의 대표와 그 마을의 장로들이 모여 증인들의 증언을 듣고, 분쟁을 조정하고 합당한 조치를 내리기 위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성문의 바로 안쪽의 공간은 법정의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아모스는 다가올 심판의 원인 중에 하나는 강한 사람들이 약한 사람을 잉용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활방식이었습니다. 강한 사람들은 약한 들을 이용하고 착취하였고, 억압적인 세금을 내는 시스템을 만들어 가난한 자의 소유를 강탈했습니다. 하지만 힘이 없는 사람들은 성문 안의 법정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법정은 너무 타락하여 가난하고 의로운 사람들을 침묵 시켰습니다. 그들의 일반적인 문화 중에 하나는 그 당시 신중한 사람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악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들은 보복을 두려워하거나 그것이 그들에게 유익이 없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날’ (the day of the Lord)은 빛이 아니라 어둠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의식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여호와의 날을 갈망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모스는 주님의 날이 그들에게 자비가 아니라 심판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마치 한 사람이 사자에게로부터 도망쳤다가 곰을 그 앞에서 만나게 된 것처럼 될 것입니다.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21)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 정한 절기의 날을 싫어한다고 말씀합니다. 아모스의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깜짝 놀라면서도 화가 났을 것입니다. 그들은 절기와 성스러운 집회를 지키면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서로에 대한 사랑의 마음과 정의와는 거리가 먼 그들의 종교적 의식에 불쾌감을 느끼셨습니다.

'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 찌로다' (23-24)

정의가 물처럼 흘러내리고 공의가 강물처럼 흘러내리게 하십시오. 우리의 종교 의식을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 분리하고, 우리가 정의와 관계없이 살면서 그분에게 무엇인가를 제물로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착각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제사와 찬양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너희 우상 기윤 곧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들어서 신으로 삼은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 (26)

분명히 그들이 만든 우상의 물건들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약속의 땅으로 갈 때 함께 가져온 이방 신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면서도 항상 우상을 지니고 숭배해왔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그 때로부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포로로 내 보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극단적인 죄는 유배와 포로생활이라는 극단적인 심판을 가져왔습니다.



3. 5가지의 환상 (7장-8장)


1. 메뚜기 재앙

선지자 아모스는 주님이 보여주신 5가지 이상을 이야기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먼저 메뚜기 떼가 몰려오는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선지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메뚜기 떼로 이루시려고 한 심판을 거두십니다. 이것은 중보의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놀라운 예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 사건이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2. 불

메뚜기의 환상 이후, 이제 아모스는 이스라엘 땅에 큰불을 끄는 환상을 봅니다. 그리고 그는 전과 같이 기도하며 자비를 간청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이번에도 그의 기도를 듣고 다시 마음을 돌이킵니다.


3. 다림줄

다림줄은 벽이 똑바로 세워졌는지 측정하는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표준에 맞게 똑바로 서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다림줄을 들고 계시며, 칼을 들고 여로보암의 집을 칼로 치겠다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다림줄의 표준에 따라 서지 않고, 항상 구부러져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심판하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던 벧엘의 악한 제사장 아마샤는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세상적인 기준으로는 성공한 것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 사악한 왕이었던 북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게 아모스가 그에 대항하여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아마샤는 여로보암 왕과 이스라엘 백성을 무너뜨리려는 음모에 아모스 선지자를 연루 시켰습니다. 아마샤는 아모스가 벧엘에 와서 예언하고 있는 것에 기분이 상하여 그를 유다로 돌려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이에 아모스는 당신의 아내는 도시의 창녀가 될 것이며, 당신의 자녀들은 칼에 쓰러질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언자 아모스를 통해 아마샤에게 하신 말씀은 그가 아모스를 잠잠하게 하려는 일에 결과로 그에게 그러한 재난이 분명히 임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반드시 자기 땅에서 포로로 끌려갈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샤가 아모스가“음모”의 일부라고 말한 것이라고 비난 한 것입니다. 아모스는 이러한 정치, 종교의 지도자들에 위협에도 불구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의 임박한 포로가 참으로 사실이라고 말할 만큼 담대합니다. 아모스는 홀로 이러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데 신실했습니다.


4. 잘 익은 과일 바구니

이것은 너무 잘 익어서 오래가지 못할 과일이었습니다. 여름 과일의 시간이 짧은 것처럼 이스라엘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매우 짧습니다. 이 비전의 요점은 심판의 임박성입니다. 아모스는 자신의 익숙한 사회 정의의 주제로 돌아가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한 사람들을 부당하게 대우하여 돈을 버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비난합니다. 이스라엘은 절기를 잘 지켰지만, 내적인 의미는 버리고 외식하면서 겉으로만 지켰습니다. 거짓 저울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속이면서 돈을 벌어 은으로 가난한 자들을 노예로 사는 그들의 모습에서 사회 속에 만성적인 부패와 부정행위의 모습을 하나님은 보시면서 분노하십니다. 사업에서 속임수와 부정은 사소한 죄가 아니며 용서되는 죄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그런 행위를 보고 계십니다.

'보라 날이 이를 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1)

하나님은 그들의 땅에 기근을 보낼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근은 먹는 음식이나 물의 기근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심판의 때가 이르면 더 이상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때가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근의 때가 이르면 많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을 것이며, 특별히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쓰러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이상과 환상으로 말씀하시고 있는 지금 그들은 회개로 반응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 사실이라면 (마 4:4),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근이 궁극적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는 기근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북 이스라엘의 사마리아는 무너지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자들이 지속적인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famine of hearing the word of the Lord (Amos 8:11)


 

5. 벧엘의 제단에 서신 하나님

아모스가 본 마지막 이상에서 그는 성전에서 심판을 감독하고 있는 하나님을 봅니다. 그들의 거짓 예배의 중심지인 벧엘의 제단을 파괴하기 위해서, 성전의 기둥을 쳐서 온 건물이 무너뜨리라 명령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기둥머리를 쳐서’ (9:1) 라고 명령하는 것에 의미는 건물의 기둥은 전체 건물을 바치고 있는 구조적으로 가장 강한 부분이기 때문에, 건물 기둥이 무너지면 집 전체가 무너집니다. 이는 완전한 파괴를 설명하는 강력한 시적 표현입니다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며 그 중에서 하나도 피하지 못하리라'(9:1) 이것은 도망치려고 시도해 볼수는 있지만 숨을 수 없다는 하나님의 표현입니다. 지옥을 파거나 천국에 오르려해도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높은 산 (Carmel)이나 바다 바닥은 심판에서 당신을 숨길 수 없습니다.

 '내가 저희에게 주목하여 화를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4) 구약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따라 그들의 순종에 근거한 축복이나 불순종에 따르는 저주(신명기 28 , 레위기 26 )가 있을 것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불순종의 삶을 완악하게 지속해 간다면, 그들의 삶에는 축복된 유익이 아니라 해가 따를 것을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9:4).

 아모스는 다시 하나님을 주 여호와라고 부릅니다. 아모스 7장에서 9장까지 아모스는 주 여호와의 이름을 12번 사용하며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합니다. 그 뜻은 문자 그대로 나를 다스리는 '나의 주인 여호와'입니다. 끊임없이 아모스와 다른 선지자들은 우리가 하나님이 누구인지 이해하고 무엇을 어떻게 행하며 살아야 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여호와 내가 범죄한 나라에 주목하여 지면에서 멸하리라 그러나 야곱의 집은 온전히 멸하지는 아니하리라’ (9:8) 

이스라엘은 택한 백성이기 때문에 다른 이방 나라와 달리 죄로 인한 심판을 피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너희는 주변의 다른 나라와 같이 범죄한 것에 대해서 주목하여 지면에서 멸해질 것입니다. (9:8)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방 나라들과 다른 점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과 맺은 언약으로 인해서 그들을 완전히 멸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포로기를 사용하여 모든 민족들 가운데 그의 백성을 키질을 할 것이지만, 그것은 그들을 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정화시키기 위함입니다. 결국 가장 작은 알곡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키질을 통해서 겨만 제거할 것이며, 가장 작은 곡식 한 알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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